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시절 서울서 공부하고 살았었지만 고궁 한 번 다녀온 적이 없었다는 걸 요즘에야 깨달았다.
당시엔 사는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팍팍했었다는 게,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가 그랬으니 아마도 이런 깨달음은 덮혀진 채로 오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버렸나보다.
다른 볼 일 사이에 짬을 내서 야간 개장한 경복궁엘 가봤다. 8시 반 이후엔 입장이 안된다고 해서 늦지 않게 서둘렀다.
그 옛날 임금이나 신하가 거닐던 경복궁과 그 후원의 경회루가있는 곳이 야간에 개장된 것이다. 그 당시 왕이나 신하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니 경회루의 황홀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당시엔 지금 처럼 조명은 커녕 불조차 밝히기 힘들었을 텐데 야경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겠다. 해만지면 몇몇 등불만 남기고 깜깜하고 적막한 풍경이 진짜 경회루의 밤풍경이었겠다 싶다.
그래도 지금은 호수와 어울어져 멋진 풍경을 감상하기 급하다.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진을 찍고있는 풍경 또한 풍경이다. 이 야간 개장 티켓은 구하기가 추석날 기차표 구하기 보다 어렵다는데 나는 가족중 한명이 손빠르게 구할 수 있어 덕분에 같이 구경할 수 있었다.
경회루와 인정전 너머로 현대식 고층 빌딩이 휘황한 조명과 함께 솟아있다. 내눈엔 이 또한 기막힌 조화로만 보였다. 도심 한 가운데 옛것과 현대가 이렇게 불빛을 주고받으며 함께 서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란!
인정전 앞은 불퉁불퉁한 돌들을 바닥에 깔아뒀고 이런 밤엔 아이들은 넘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길 보는건 밤보다 날이 좋겠다 생각되었다. 정일품부터 주욱 품계를 적은 입석이 줄을 서 있다. 임금과 신하가 이렇듯 서 있는 곳부터 다른 전제 군주의 사회에서 지금은 전혀 다른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더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고 이 궁전 앞 광화문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요즘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릿카락이 휘날리고 오늘 저녁 부터 기온이 떨어진다는 예보가 맞게 바람이 서늘하다.
이젠 옛날에서 다시 현대로 돌아가야겠다. 광화문 앞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한잔을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