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엔트로피란 말은 많이 들어본 것같다.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몰입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이 되는대로 사는 것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것이라 했다.
세상 만물은 그냥 두면 무질서하게 변하면서 에너지가 평준화되는가보다.
그것은 마치 삶과 죽음 같다. 결국 사람은 언제간 죽게되고 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해 왔던 인체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는 다시 무질서의 바다에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무한한 에너지의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 작은 생물이 되기도 한고 커다란 바위나 행성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인연이 다하면 무한의 바다에 떨어진다. 흔적을 찾을 수도 없지만 찾는다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이 거대한 바다를 그 옛날 석가모니는 화엄세계라 하여 장엄하게 바라보았다.
인간도 그렇게 나타난 어떤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화자찬을 하며 으시대지만 저 바위나 별처럼 언젠가 인연이 다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천국이니 내세 같은걸 만들어 애써 이 사실의 예외로 있고 싶지만 일월이 어디 인정에 굽힐까보냐.
또한 나날의 삶 같은 비물질 조차도 이 장엄한 엔트로피의 바다에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하다. 석가모니는 이를 일러 색이 공하고 공이 곧 색이라 했다. 우리가 정신인지 또는 물질인지 헷갈려 해온 방황을 그치게 하는 이 말은 언제나 그의 말의 중심에 있다..
에너지의 바다 그것은 장엄한 화엄세계이고 바로 내 코끝에 이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