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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참으로 대단하고 가련(可憐)하다.
이 멋진 문명세계를 만든 위대한 면이 있는가 하면 백년도 못살고 사라져버리는 어설픈 존재이다.
사라지고 나서 저세상 같은 건 없으니 더욱 하잘 것 없는 존재임엔 틀림없다.
사람들은 그런 것이 두려워 골똘히 내생이란 걸 궁구해내어서 그 허망함을 메우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한 적 없는 것은 실제로 그런건 없기 때문이다.
이 내생의 문제를 툭 털어버리고 나면 사람은 멋진 대장부가 된다.
그러나 그 툭 털어버리는 일이 불완전하면 허망함에 다시 빠져 허우적대게 되어있다.
주변에는 그러한 사례가 너무나도 많이 보인다.
불완전한 도인 행세도 그렇고 뭔가 알긴 알았는데 깔끔하지 못하고 조잡스럽다.
이 툭 털어버림은 석가모니 부처님 처럼 공부가 확철해야 하는데
요즘의 마음공부는 애써 침잠하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전면적이고 이성적인 개오가 더디다.
깨달음이 부처님 처럼 반드시 연기법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깨달음과 동시에 모든 만물이 경계없이 하나가 되면서 내외가 일시에 명철해진다.
깨닫고 나면 사람이라 할 게 실로 없다, 그러니 전생이니 내생은 더더욱이나 붙을 데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스님이 이를 두고 "귀신 방귀에 털났다"라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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