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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

만덕이2 2024. 1.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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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나 이 삼십 년씩 도를 닦았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사는데 다른 점은 없다, 똑 같이 배고프고 목마르다.

 

그렇다면 뭐할라꼬 도는 닦나?

그저 자기 아픔을 해결하고자 함에 다름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나 아플까?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오직 자기의 덜 채워진 욕망이 아픔일 테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 배 고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 고픈데를 채워나가는 것이 이른바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인은 뭐가 고픈 사람일까?

처음엔 도인이라고 별 다른 것이 없었다, 그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 궁금증 때문에 출발했다.

그런데 이 궁금증이란게 양파껍질 처럼 까면 갈수록 답이 찾아지길 않는다,

속 마음 깊이 수긍하는 답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계속 파들어 가는 곳이 있다. 

어떤 사람은 과학에, 또 다른 이들은 예술에, 종교에, 문학, 인문 등 온갖 잡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도인이란 이러한 궁구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도인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도인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과학자 예술가 장인 등 넓은 의미엔 도인이지만 그리 부르지는 않는다.

도인은 이 모든 것의 궁극이 아직도 고픈 사람이고 그 궁극이 해결된 사람이다.

 

그 궁극이란게 뭔데?

궁극이란 어떤것들의 바탕, 처음이자 끝 같은 것이다.

과학자들의 논리적 사고의 기틀 같은것 이고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삶의 원형(原形)같은 것이지.

끝까지 추구한 자리에서 바라보는 하늘 같은 것이지. 무엇이다 라는 말이 성립하지 못하는 곳이고.

 

그 궁극이 해결되면 뭐가 달라지나?

똑같이 배고프고 목마르다, 다시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온 느낌이지만 처음과 같지는 않다.

이 배고픔은 배부름을 향한 배고픔이 아니다. 이미 가봐서 아니까 더이상 여기에 함몰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다를뿐이다, 범부의 삶이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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