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는 맥주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에 독일에? 아니면 일본? 혹시 중국 칭따오?
아니다 그건 산 밑에 있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면 정말 맥주가 맛있다. 하이트건 카스건 상관없다.
이렇듯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에? 스위스에? 아니면 핀란드나 먼 남태평양의 피지섬에 있을까?
이것도 맥주처럼 가장 큰 갈증이 해소되는 자리에 있다.
그 갈증은 학수고대하던 목표이기도 하고 빠져나가고 싶은 불행의 질곡일 수도 있고
인생의 모든 에너지가 축적되는 곳이다.
갈증처럼 행복에 대한 바램도 채워지고 나면 곧 사라져버린다.
한번 행복해진다고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듯이 갈증이 채워진 이후엔 다시 세상은 다른 조건들로 채워지고,
이 조건들에서 다시 갈증이 생기고 우리는 조바심하고 스스로 경책하면서 나아간다.
이런 프로쎄스를 삶이라 부르며 한발 물러서기도 하고, 바짝 다가가 집착하기도 한다.
삶은 이런 조건들의 연속체이다.
우리 각자는 이미 프로그램된 "생존"이라는 패를 들고 이 조건의 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늘 추구되고 획득된 결과들로 부터 배우며 데이터를 쌓아나간다.
그 모아진 데이터에서 나름의 견해를 주장하기도 하면서.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충분히 가변적이며 어느 하나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의 아이덴티티 조차도 확실히 불변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아이덴티티가 데이터와 별도로 존재한다고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있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철학과 종교의 궁극적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덴티티가 데이터와 별개인가 아니면 그것도 데이터의 축적의 결과물로서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가?
이것은 우리가 무한루프로 부터 탈출하느냐 못하느냐의 기로에 서게하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