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앉아서 강낭콩을 까다가 일부는 서울에 있는 딸네집에 보내 주기로 했다.
올해 4살된 외손주가 강낭콩을 처음 볼것이라, 까지 않은 채로 예닐곱 개를 같이 넣어 보내주었다.
그림책에서 강낭콩을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실물로 강낭콩을 눈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리라 생각하며 이 강낭콩체험(?)을 신기해 할 손주의 표정이 상상되어 우리는 절로 웃음이 났다.
그래, 책에서 그림으로 보는건 체험의 극히 일부분이다. 강낭콩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실제 손으로 까보니 알맹이가 톡 하고 나오는 체험에 비하면 책 으로 익히는 학습이란 참으로 부실하구나 생각 되었다.
얼마전에 TV에서 "굿윌헌팅"이라는 영화를 봤다. 수학의 천재성을 타고난 윌 헌팅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까닭으로 마음 깊이 상처를 갖고 삐뚤어진 삶을 살고있다. 이를 간파한 정신의학 교수 숀은 그가 이런 상처를 넘어서 온전한 성인의 삶을 살게하기 위해 꾸준히 상담한다.
거기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너는 여자와 잘 수는 있지만 아침에 그녀의 옆에서 눈을 뜨며 느껴지는 안온한 행복감을 모르잖아?"
그렇다, 우리는 나날의 삶을 깊이 체험하기 보다는 피상적인 지식 더하기로 살고있는 부분이 많은 것같다.
네살 짜리 손주가 강낭콩 깍지를 처음 손에 쥐듯 온몸으로 느껴지는 삶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약간 부드러운 초록 껍질 속에 동그란 강낭콩을 꺼집어내는 손놀림이며, 그 풋풋한 풀냄새를 맡으며 껍질을 벌려 가지런히 누운 콩들을 보는 경험이야말로 몸이 익힌 체험 즉 체득되는 것들이다.
이에 비하면 책이나 그림으로 피상적으로 알게된 지식은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은가?
영화에서도 이런 메세지는 계속되고 윌 헌팅은 끝내 이런 교수의 마음에 계합한다.
삶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굿(good) 윌 헌팅이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