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약국 직원 미스최가 제안을 했습니다.
조제 약포지에 아침 점심 저녁을 인쇄해서 쓰자고요.
자기가 약포지 공급하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인쇄를 하나 안하나 값이 같다고 하더라면서.
저는 그 제안을 즉각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 요즘은 약포지에 따로 아침이나 점심도장을 찍는일이 없어졌지요.
이 간단한 생각을 십년 이십년이 넘도록 못하고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글자를 새기면 약포지 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선입견과 글자가 필요없는 경우가 절반은 된다는 생각이 이 작은 혁신을 거부해왔던 것이지요.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장기 처방약을 지을 때 약국 조제실이 좁아서 처방전을 둘 곳이 마땅찮아 애를 먹었는데
어느날 근무약사인 강약사가 처방전을 조제대 선반에있는 조제약 서랍과 조제약선반 사이의 틈에 끼우는 것이었습니다.
맞아! 그 생각을 왜 못했지?
그 날 이후로 장기 조제시 처방전은 으례 조제선반 틈에 끼워집니다, 참 간단히 편해졌어요.
옛날 6.25 전쟁 때한 한 미국 기자가 한국에 와서 신기한것 두가지라고 말했는데
그 하나는 한국사람들이 손재주가 정말 좋다는 것인데 미군이 버린 통조림 깡통을 일일이 펴고 이어서 넓직한 지붕을 만드는 걸 보고 감탄했다는 것이고요,
두번 째 놀랄 것은 그런 재주가 있음에도 화장실은 전년 백년 개조할 생각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화장실이 모두 수세식이고 좌식 변기에 비데까지 쓰는 시대지만 수 천년 동안 화장실은 그대로였고 그게 요즘처럼 바뀐건 아주 최근의 일이 틀림없지요.
혁신은 이렇듯 외부사람들의 눈에는 모순이 잘 보이지만 내부의 구성원들의 눈에는 여전히 문제없음으로 보입니다.
화장실이며 약포지며 처방전 걸어놓기가 오랫동안 혁신의단비를 맞이하지 못한건 그리 보면 당연한 것이었겠지요.
외부의 눈으로 보기란 그래서 참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바로 외부의 눈으로 보기의 작은 실천입니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공유해보려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이 점이 바로 외부의 눈입니다.
내생각과 같지 않은게 당연하고 그 다름이 어디에서 출발하였는지 찾아보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공감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름의 이유라는 소중한 자산을 챙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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