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해방일지

만덕이2 2022. 12. 1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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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코로나가 걸려서 집안에 격리되어 며칠을 지냈다.
문 밖을 나설 수가 없고 컨디션이 나쁘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 드라마는 그 때 봤다. 1편 부터 16편을 이틀에 걸쳐 봤다.

보통의 시민, 크게 내세울 것도 재능도 고만 고만한 우리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 해방이라는 말을 해탈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해탈을 대단히 거창한 득도의 경지로 여긴다.
불교의 고승들이 수십년 도를 닦아 얻는 높은 경지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갖가지 문제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고 이 자유를 얻는 것을 작가 처럼 해방이라 부를 수도있고
점점 더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여 더 큰 자유를 얻는다면 해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좀처럼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고 늘 그 쪽으로 생각이 쏠려있는 수많은 이른바 이류, 삼류 인생들.
주인공은 어느 때 부턴가 그 충만함이 스스로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겉치레를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가 기쁨으로 차오르는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누가 뭐래도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는 길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길임을 작가는 말하지만
어떻게해서 그게 가능한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나날의 삶 속에서 솔직, 진실하게 산다고 그래서 누군가가 그를 "추앙"한다고 그게 이루어질까?

불교에서는 但盡凡情 別無聖解(단지 범부의 정이 떨어질 뿐, 성인의 경지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왜 성인의 경지가 따로 없다고 하였을까?
그렇게 노력하여 수 십 년을 수행한 사람들에게 왜 별다른 경지라는건 없다고 말을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 원래 원만히 구족되어 있기 때문이다.
범정(凡情)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잘못 생각하여 갖게된 수 많은 문제점과 근심을 바른 생각으로 치환하면
원래부터 우리가 갖고있는 수 많은 지혜가 자동 발현된다는 뜻이니 그 위에 따로 성인의 경지를 세울 일이 없다는 말이다.
수많은 지혜의 발현은 법열(法悅)과 자비이다. 충만한 기쁨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눈길로 말할 수 있다.

드라마는 그냥 방향만 일러줬다.
구체적인 방법을 이르진 않았지만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솔직, 진실하게 말하는 것으로 방편을 삼았다.
그렇게 하면 하나씩 범정이 떨어져 나간다. 좀 더 깊이 진솔하게 스스로를 드러내 보면 좀더 근본문제를 만날 수 있다.
그 근본 문제에 문득 자유로워질 때 우리의 근본 지혜는 발현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백배 천배 더 현명하고 기쁘게 살 수 있다.
이 근본 지혜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지만 범정 때문에 딱 그 만큼만 써먹는 반쪽 삶을 사는 우리이다.
그 옛날 부처님이 모든 인간과 동물 등 일체가 부처라고 했던게 빈말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완벽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걸 의심하지 않는것 그것이 유일한 신앙이다.
해방일지는 그래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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